2000년 나는 가톨릭의 세례를 받았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본 가톨릭은 세상과 정당하게 소통하려는 진심이 있었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서있었다. 나는 나에게 닥친 뜻하지 않은 역경을 가톨릭 교회에 의지해 극복해가고 있다. 내 신앙생활에는,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많은 신자들과 더불어 피에르 신부의 삶과 사상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피에르 신부를 알게 해 준 첫 만남은 그의 저서 “단순한 기쁨”을 통해서다. 그는 이 책에서 ‘한 사회가 할 일은 무엇보다 그 사회의 가장 나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인간적인 삶에 매료되었다.
바티칸이 베네딕토 16세를 교황으로 선출했을 때 나는 적잖은 실망과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피에르 신부는 그의 책 “하느님 왜?”에서 베네딕토 교황의 선출을 다음 교황을 준비하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보면서 비록 교황이 라칭거 추기경이었을 때, 신앙 교리성의 가공할 수장이었지만 교황으로 선출된 그의 눈은 행복하고 평온해졌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신뢰하는 피에르 신부의 식견에 안도했다. 베네딕토 교황도 첫 연설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개방과 대화를 지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교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교화해에 반하는 행보를 계속하였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했고,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악했다고 말해 무슬림의 반발을 샀다. 브라질에서도 가톨릭 교회의 침략성을 부인하는 언행으로 원주민들의 반발을 사더니 급기야 최근 보스니아 내전 희생자 추도식에서 ‘가톨릭 이외의 다른 교파는 참 교회가 아니다’고 말해 세계평화를 위해 가톨릭 이외의 종교 가치를 인정하기로 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착잡한 심정이다. 피에르 신부가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가톨릭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기독교 교회’라는 선언은 한국 가톨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얼마 전 신문에는 한기총 소속의 교회에 30년 넘게 다닌 한 집사가 그 교회가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앞장서는 것을 보고 교회를 그만 다니겠다는 글을 실었다.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 가톨릭에도 ‘우리는 할만큼 했다. 이제 좀 그만해도 안 될까?’하는 사회참여를 저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 가톨릭의 성장이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고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룩한 성장이라는 점을 잊어가는 것일까?
교황이, 가뜩이나 울고 싶은 한국 가톨릭의 볼기를 때리는 꼴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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